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제핀 드 보아르네 (문단 편집) === 조제핀과 마리 루이즈의 차이 === 나폴레옹이 조제핀을 버리고 [[마리 루이즈]]와 결혼한 것을 정치적 실수로 보기도 한다. 당시 조제핀은 "승리의 부인(마담 드 빅투아르)"이라고 불리며 병사들의 인기를 얻고 있었다. 그리고 나폴레옹이 조제핀과 함께 하던 시기는 프랑스와 그 자신이 잘 나가던 시기였다. 그런데 [[마리 앙투아네트]]의 조카손녀인 [[마리 루이즈]]와[* 마리 루이즈의 친할아버지인 [[레오폴트 2세]]의 막내 여동생이 바로 마리 앙투아네트다. 마리 루이즈에게 앙투아네트는 고모할머니인 셈.] 결혼한 후 국내적으로는 국민들이 마리 루이즈를 오스트리아 여자라고 비난하기 시작하고, 대외적으로는 [[러시아]]와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몰락이 시작된다. 게다가 프랑스 혁명이 대체 어떤 사건인가. 민주주의, 자유주의, 전체주의 이런 후세에야 완성된 이념은 집어치우고, 아베 세예즈가 했던 "제 3계급이란 무엇인가? 모든 것이다"라는 말처럼 [[내셔널리즘|민족주의]]를 새로운 시대의 정치 이념적 글로벌 스탠다드로 각인시킨 사건이다. 안 그래도 '프랑스인', '프랑스 민족'이란 담론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시절, 그 험악한 혁명 시기를 다른 파리 시민들과 함께 겪으며 어찌 국모의 자리까지 올랐던 조제핀은 프랑스 민중의 입장에선 사생활의 일탈이나 사치와는 별개로 '그들 중 하나', '동네 언니에서 황후까지 올라간 자랑스런 혁명의 딸'로 인식했다. 본인의 배경이 '서민'은 좀 오버라 할지라도[* 조제핀의 출생지는 [[마르티니크]] 섬으로 부유한 설탕 농장 경영자의 집에서 태어났다. 물적으로는 풍족하지만 신분 자체는 평민이었는데, 본래 [[프랑스 혁명]]을 주도한 세력은 이렇게 돈과 교육 있는 평민, 즉 제 3계급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물적인 의미에서 '서민'은 아니었어도 나름 혁명기의 '전형적' 사례에 해당되는 인물이었다.[* 다만 조제핀의 처녀적 성인 타셰 드 라파제리에서 타셰 가문은 프랑스의 지방 영주 출신인 귀족 집안이며, 타셰 드 라파제리는 타셰 가문의 종가이므로 완전히 평민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. ]][* 사실 유럽은 [[귀천상혼]] 배제가 심하기 때문에 왕실에서 신분이 맞지 않는 결혼, 즉 왕가보다 급이 낮은 가문과 결혼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. 괜히 현대까지도 영국에서 [[캐서린 미들턴]]이 결혼 당시 평민 왕세자비라며 화제가 되었던 게 아니다. 하물며 시대를 감안하면 아무리 재벌가라도 제3신분 출신이 황후까지 되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컸던 셈.] 어쨌든 조제핀은 프랑스 혁명기의 평지풍파를 남들과 똑같이 겪으며 서민들의 고충과 정서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었다. 이런 국뽕 쩔게 나라 위엄 세워주는 황제의 아내이면서도 민중과 정서적으로 가까웠던 황후를 쫓아내고, 전통적인 적국이자 프랑스 혁명이 타도하려 했던 구 체제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오스트리아 [[합스부르크 가문]]의 황녀를 새로 들였으니 민중의 반응이 좋을 리가 없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